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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4. 22:20

된장국과 포도주 사람사는 세상이야기2014. 7. 4. 22:20

이 글은 2009년 9월 3일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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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은 독일사람이다.

대학에서 만나 사랑하고 결혼했다.

마누라가 이쁘면 처가의 말뚝을 보고도 절한다고 했던가?

이 남자 이 말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누구나 한국과 인연을 맺으면 쉽게 빠져 버리는 한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

이 남자 또한 다르지 않다. 그의 한식에 대한 사랑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이다.

 

독일의 겨울 날씨는 참으로 우울하고 침침하다.
특히 이 전 유학시절, 이런 날씨는 괜히 집생각 더 나게 만들었다.
한 번 집 생각나면, 공부도 잘 안돼고 '내가 여기서 지금 뭐 하나?'...그랬다.

이런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한 나 나름대로의 처방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된.장.국.이었다.
마늘넣고 진하게 끓인 된장국 한 그릇이면 말끔히 치료되었다.
그 당시 나에게 된장국은 아픈 배를 쓰다듬어 주시던 엄마의 따뜻한 손이었고 향수를 달래주는 고향의 그리운 냄새였다.
끓을 때의 그 콤콤한 냄새가 코 속으로 서서히 춤추며 들어 올 때, 우울한 마음도 스트레스도 말끔히 사라졌다. 그리고 조금 후 이 향기가 온 집안을 가득 채울 때, 마음 속은 행복감으로 충만했다.

 

지금은 사랑하는 남편과 예쁜 두 아이와 함께 있으니 이 전처럼 그런 외로움에 젖진 않지만,

그래도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끓여 먹고, 추운 겨울에는 하루 걸러 한 번씩 끓여 먹는다. 
그러다 보니 남편도 자연스럽게 된장국의 깊은 맛을 점점더 즐기게 되었다.

남편의 식성은 한국사람인 내가 봐도 놀랄정도로 한국적이다.
이 전 나를 알기 전부터 인터넷을 뒤져 직접 김치를 담아 먹을 정도였으니까......

고기 먹을 때 함께 싸 먹는 쌈장도 정말 좋아한다.
이 쌈장에 밥을 비벼 먹기도 하고 어떨 땐 빵위에 발라서도 먹으니 그 사랑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으리라.^^

남편의 식성이 이렇듯 한국적이니 우리 집의 저녁은 거의 한식이다.

식재료를 원하는대로 구할 수 없으니 이 곳에서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이 것 저 것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한다.

그러다 보니 국적 불명의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아니, 요즘 유행하는 말로 퓨.전.음.식.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음식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거의 없다고 봐야겠지?
왜, 한국음식 좋아하는 많은 외국인들 다른 것은 다 먹어도 아직 된장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된장국이 먹고 싶으면 신랑 눈치 때문에 조심해서 먹는다고도 하고. 내가 아는 어떤 분은 남편 몰래 숨어서도 먹었다고 한다. 그 점에서 본다면, 난 복 받은 거다.^^
오히려 남편의 주문으로 된장국을 끓일 때가 더 많다.

그 날도 그랬다.
원래는 된장국을 끓일 생각이 없었다. 그 날의 메뉴는 이탈리아식이었다. 
남편 퇴근시간에 맞춰 간단하게 모든 준비를 해 뒀다.
이탈리아식은 한식에 비교해 본다면 준비시간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 물론 '내 마음대로 이탈리아식'이긴 하지만.

이탈리아 빵, 촤바따에 올리브 기름 뿌려 오븐에 넣고, 기름에 살짝 볶은 채소에 방울토마토, 각종 허브 넣고 조금 더 볶다가 생선과 함께 알루미늄코일에 둘둘 말아 오븐에 넣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음식이 다 되면 식탁에 예쁘게 셋팅하고 거기다 포도주 한 잔 곁들이면 그만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선에는 백포도주를 마시지만, 남편과 나는 적포도주를 더 좋아해서 우린 생선 음식에도 이 걸 마신다.
이렇게 저녁을 준비해 두었다.

드디어 남편이 퇴근해 왔다.
그런데 하는말, '며칠동안 된장국을 먹지 않았다. 오늘은 된장국이 많이 그립다. 끓여 줄 수 있느냐'하는 거다.
'엥? 음식 준비 다 되었는데...이게 무신소리?'
이 남자 원래 음식 투정 않고 주는대로 맛있게 잘 먹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특별히 주문하는 것이 없다.

그러던 남편이 오늘 된장국 먹기를 희망한 거다. 그러니 안 해 줄 수가 없지.

서둘러 감자 깍아서 물에 넣어 불 위에 올려 놓고, 된장 풀어 마늘 넣고, 준비된 다른 재료가 없으니 양파 반 개 썰어 함께 끓여 된장국을 뚝딱 만들어 냈다. 된장냄새가 온 부엌을 가득채웠다. 그러자 남편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그래~ 이 냄새야~~!'하며 마냥 좋아하는거다.

'내~ 참~누가 한국사람인지......'

식탁에 음식을 다 차려 놓고 식사를 하려고 보니, 아주 재밌는 식단이 되어버렸다.

이탈리아식 생선 음식에 독일산 붉은 포도주, 거기다 한국의 된.장.국.
남편 먼저 된장국을 한 수저 뜨고 나서 '으~~~음~~~ 이 맛이야!!!'한다.^^
이렇게 우린 그날 행복한 저녁식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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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내별meinste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