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2010. 4월 20일 작성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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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을 떠나서 살다보면,
마치 짝사랑 하는 사람을 그리듯이 고국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 짝사랑에 마음 아파하고,
가끔은 아주 가끔은 외로움에 울어 버리곤 했다.
그럴때면 그 짝사랑을 위로해 주는 것이 있었다.
듣기만 해도 신명이나고,
정말 살 맛이 나는 것,
그것은 바로,
이젠 우리도 그 누구와도 당당하게 경쟁 할 수 있다는 것.
자라나는 세대는 열등의식 없이,
있는 그대로 당당하게 세계의 젋은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보다 나은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자신감.
또한 그 중심에 우리가 설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
이 모든 사실이 그리움과 외로움의 큰 위안이었다.
그 위안의 중심에 계셨던 한 분.
그 분이 우리 곁을 떠나신지도 벌써 1년의 세월이 다 되어간다.
난, 그 분을 통해 내 아이들의 미래를 보았고,
그 분으로 인해 나를 깨어 나갔다.
감히 내가 그 분과 같은 삶을 살아 갈 수는 없겠지만,
난, 소망한다,
좀 더 그 분의 삶을 닮아 갈 수 있기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의 삶을 닮아 갈 수 있기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나는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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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그 소식을 듣고 너무 슬퍼,
가슴이 먹먹 할 때,
날, 치료해 준 나의 고백이다.
이 고백 덕분에 그 당시 나 자신을 추수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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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노대통령님을 만났다.
나는 지금 독일에 살고 있다.
96년 10월 고국을 떠나 지금까지 이 곳에 살고 있으니 길다면 긴 시간을 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난, 학비와 생활비를 직접 벌어가며 공부를 해야 했기에 세상사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하물며 고국에서의 사정은 말하면 뭐하리.
15대, 16대 대통령 선거도 이 곳의 방송을 통해서 전해 들었을 뿐, 언제나 처럼 내일에만 충실하게 열심히 살았다.
2002년 월드컵으로 온 세상이 다 들떠 있을 때도 강의실과 아르바이트 장소만을 오가며 그렇게 세상과 담을 쌓고 지냈다.
빨리 공부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가 학교에 자리 하나 잡고 엄마 모시고 잘 먹고, 잘 살 생각 뿐이었다.
그래서 공부 이외의 다른 일에 관심을 갖는 다는 것은 사치처럼 여겨졌다.
그래도 난 행복했다. 이루어야 할 확실한 목표가 있었기에.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그러다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노 대통령님의 독도 연설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난, 지금까지 이렇게 명쾌하고 당당하게 연설하는 대통령을 보지 못 했다.
연설을 듣고 있는 동안 내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알 수 없는 뜨거운 것이 꿈틀거리기 시작 했고,
그 것은 곧 커다란 감동으로 밀려 왔다.
난, 노무현 이라는 사람이 궁금했다. 어떤 분인지 더 알고 싶어졌다.
그 날로 몇 날 며칠을 인터넷을 뒤져가며 그 분의 모든 동영상을 찾아 보았다.
그 분을 알아 가면 알아 갈 수록 기쁨은 더 했고,
마치 진흙에서 보석을 발견한 것 처럼 횡재한 기분이었고, 귀하게 여겨졌다.
때론, 박장대소를 하며 그 분의 유머에 즐거워 했고.
때론, 그 분과 함께 분노 했으며,
때론, 그 분의 철학과 말씀에 희열을 느끼며 감동했다.
난, 점점 노짱님의 매력에 푸~욱 빠져 들었다.
이런 대통령을 만나게 된 것을 감사하며,
이런 분이 우리나라의 대통령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비록, 나의 한 표는 함께 하지 못 했지만,
그 분을 뽑은 대한민국의 국민, 국민의 일원으로서 스스로가 기특했다
그 분의 삶을 조금이라도 비슷하게 따라가며 살리라 다짐했다.
탄핵을 받을 때도 국민과 함께 난 나의 대통령과 함께 했고,
임기를 마치시고 고향으로 가는 기차에도 난 나의 대통령과 함께 했다.
비록 몸은 이 먼 곳에 있지만 난 항상 나의 대통령과 함께 했다.
매일매일 사람사는 세상에 '출근'하면서 노짱님의 하루를 엿 봤고
그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즐거워하며 마음으로 함께 했다.
봉하를 방문하여 노짱님을 직접 만나는 사람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노짱님을 직접 만나고 오신 팔순의 우리엄마가 자랑스러웠고,
엄마를 모시고 봉하를 다녀 온 오빠가 고맙고 부러웠다.
그리고, 나도 내년에는 그리운 노짱님 뵈러 봉하에 가기로 4살박이 딸아이와 약속했었다.
근데, 이제 그 곳에 나의 님은 안 계신다.
나의 짝사랑은 나의 곁을 떠나셨다.
나의 짝사랑은 내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 또 얼마나 존경하는 지 모른체 떠나셨다.
나의 짝사랑은 이젠 편안히 남은 삶을 행복하게 살 기회마저 빼앗기고 등떠밀리듯 나의 곁을 떠나셨다.
다시는 내 살아 생전에 님의 따뜻하고 온화한 모습을, 다정하고 정감있는 목소리를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믿기지가 않는다.
벌써 보름이 지났구나......
그동안 내가 어떻게 보낸는지 모르겠다.
인터넷을 뒤지며 내 님의 흔적을 찾아 헤매며 미친듯이 울고 또 울었다.
그리고 분노했다.
이젠 나의 님을 보내 드려야겠지
근데 난 아직 내 님을 보낼 수가 없다.
내년 가족들과 함께 내 님의 '작은 비석'앞에서 직접 작별인사를 하고 보내 드릴 것이다.
노짱님!
그 때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