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면 남편의 성을 따라야 하나요?
예전 유학시절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잠깐 소개할까 합니다.
이 전에 있던 도시에서는 유학생들과 교민들의 교류가 활발했습니다.
연말이 되면 한인회와 학생회가 함께 모여서 음식도 나눠먹고,
정담도 나누고 했지요.
이 연말 모임은 유학생들에게 아주 고마운 모임이기도 했습니다.
집을 떠나 혼자 생활하면서 항상 그리운 것은 엄마가 해 주신 따뜻한 집밥!
그리고 그리운 친구와 맛난 음식들이지요. 이 것을 한꺼번에 해결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일년에 한, 두번 있는 이 모임이니까요....^^
한인회의 주축이 되는 분들은 오래 전에 한국을 떠나서 이 곳 독일에서
각자 자리를 잡고 생활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연세들도 많은 편이지요.
어떤 분은 간호사로 오셔서 독일분과 가정을 이루고 사시고, 또 어떤 분은 광부로 오셨고, 또 어떤 분은 유학을 왔다가 여기서 사랑하는 이를 만나 뿌리를 내리기도 했고.....
아무튼, 참 다양한 분들이 계셨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이유로 독일에 살고 계시지만, 이 분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모든 분들이 다 한국을 몹시도 그리워 한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아들 딸 같고, 동생같기도 한 유학생들에게 정을 참 많이 주십니다.
한국사람들에게서 이 '정' 이라는 것은 삶에 있어서 참 좋은 에너지인 것 같습니다.^^
사람과 사람을 따뜻하게 연결하고 소통시키는 좋은 유산이지요.
하지만, 가끔 이 정이 너무 지나치다 보면, 불협음이 발생하기도 하는데요.
이유는 두 집단간 생각의 차이에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두 집단간의 나이 차이가 많다 보니, 또 서로 살아온 세대가 다르고, 그 세대를 지배했던 생각들이 다르다 보니 발생하는 경우들이지요.
연세드신 분들 중 일부는 어린 유학생들을 정말 아들,딸 대하듯 너무 허물없이 생각하다 보니, '막'대하는 분들고 계셨습니다. 특히 60-70년대에 한국을 떠나셨던 분들은 한국에 대한 사고가 '딱 그 시대'에 멈춰있었습니다.
물론 모든 분들이 그런 것은 아니구요, 생각이 깨이신 분들도 계셨지만, 대부분이 그랬지요.
하지만 요즘 젊은 유학생들이 어디 그런가요. 다들 개성이 강하고 자기 의견도 확실하게 표현하는 그런 세대잖아요. 그러다 보니 그분들과의 마찰도 적지 않게 있었지요.
그러면 나이드신 분들은 그런 학생들에게 '예의'(어떤 분들은 싸가지없다는 표현도 쓰셨구요) 없다며 못 마땅하게 생각 하셨지요.
(사진 출처, 구글)
사설이 길었네요....^^
아무튼, 이 연말 모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교민분들이 준비해 온 맛난 음식들을 먹고 즐겁게 대화를 하던 중, 한 젊은 교민이 결혼하면서 자기의 성을 남편의 성으로 바꿨다는 이야기를 했지요. 아직 독일 생활에 익숙치가 않은 한 유학생이 '결혼을 하면 꼭 남편의 성을 따라야 하나요?'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질문이었지요.
이 질문을 듣고 계시던, 나이가 지긋한 한 교민께서 '그럼, 독일에 왔으니까 남편의 성을 따라야지, 여긴 다 그렇게 해. 그게 법이야!!!' 라며 버럭 화를 내시는 겁니다.
이 질문을 했던 유학생은..... 할 말을 잃었죠. 그냥 궁금해서 질문을 했을 뿐인데.....
이렇게 버럭 화를 내며,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이 야단을 치시니.....
이 분은 간호사로 오셨다가 독일 분과 결혼해서 사시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진 모르겠지만, 한국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생각들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뭐든지 독일이 한국 보다 낫다'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계셨지요. 한국은 독일 보다 못 살고, 독일보다 수준이 낮고, 독일보다.....기타등등, 항상 한국과 독일을 비교했습니다.
그 분의 이런 주장이 다른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얻지 못한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지요.
이 분의 이 말에 또 다른 유학생이 '아니에요, 요즘은 굳이 성을 바꾸지 않아도 돼요. 원한다면, 자기의 성을 그대로 쓸 수 있어요' 라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이 분, 파르르 떨며, '네가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래? 난, 이 곳에서 30년 가까이 산 사람이야. 독일에 대해서 알면 내가 더 알지 네가 더 알아? 결혼 하면 모두 성을 바꿔야 돼!!'......라며 막무가내로 야단을 치시는 겁니다......ㅜ.,ㅜ
그 뒤부터 이 소문이 유학생들 사이에 퍼져서, 다들 이 분을 피해 다녔지요.
사실, 제가 직, 간접으로 알고 있는 한독가정의 대부분의 한국 여자분들은 결혼을 하면서 남편의 성으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프라우 A , 프라우 B, 프라우 C....한국사람들 사이에서도 서로 이렇게 불렀구요.
나이 드신 분들은 거의 모두, 한국의 성과 남편의 성을 같이 쓰시는 분들도 몇 몇 계시구요.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한국의 성을 그대로 쓰시는 분은 만나보질 못 했습니다. 한참 전의 일이니, 지금은 많이 다를 겁니다.
예전엔 결혼을 하면 무조건 남편의 성을 따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정확한 연도는 잘 모르겠네요...)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젊은 독일 여자들도 처녀때의 성을 그대로 쓰기도 합니다.
결혼을 해도 이름을 바꾸지 않는 우리나라의 상식으론 이 것이 별건가...? 생각 될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의 여성들이 더 오래 전 부터 무의식적으로 '여성해방(Emanzipation)' 운동을 하고 있었다고도 볼 수 있지요. ^^
꼭 '여성해방'이라고 거창하게 말 할 것까진 없지만, 저는 결혼을 해도 이름을 바꾸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36년이란 세월을 아무개로 살아 왔는데, 갑짜기 입과 귀에 익지 않은 남의 나라 이름으로 바꾼다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요. 비록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성일지라도 말입니다.^^
굳이 바꿀 이유가 없었지요.
이 뜻을 남편에게 전했더니, 남편도 그런 저의 생각을 존중해 주었습니다.
'만약 자기라도 갑짜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면 이상할 것'이라며, 저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지요.
그래서 저희 집에선 저만 성이 다릅니다....ㅋㅋ
근데, 이 것이 가끔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
남편과 성이 다르다 보니, 우리가 가족관계라는 것을 항상 부연 설명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ㅜ.,ㅜ
아이들도 처음엔 이해를 못 할 뿐더러 헤깔려 했지요. '왜 엄마는 성이 달라?' 아이들이 자주 하던 질문입니다.
헤깔려 하는 것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학교 선생님도, 유치원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은 제 성으로 '프라우 아무개' 라고 부르기도 하고, 한 번은 남편의 성으로 '프라우 B' 라고 부르기도 하고....오락가락합니다...ㅋㅋㅋ